1. 우리나라의 고유명사(固有名詞)는 동방예지국(東方禮儀之國)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동쪽에 있는 예절의 나라(東方禮儀之國)라 했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한 문헌적 근거를 최초로 밝힌 문서는 1993년 1월 29일에
교육부 장관이 문서번호 정신81120-21호로 시달한 민원회신 문서로서
'동방예의지국'의 출처에 대하여: 729년 발해(渤海)의 고왕(高王 大祚榮)의 문신(文臣)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檀奇古史)의 부록에 서기전 268년 중국 곡부의 공빈(孔斌)이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동방예의지군자국(東方禮儀之君子國)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린다고 하였다.' 1950년 3월에 경찰교양협조회에서 국역 간행하였는
그 부록에 실린 글이다.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나와있는 중요내용
풍속이 순후해서 다니는 이들이 길을 양보하며, 먹는 이들이 밥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자리를 함께하지 않으니 동쪽에 있는 예스러운
군자의 나라라 할 것이다.(風俗淳厚 行者讓路 男女異處而不同席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 동쪽의 옛 나라 한국의 임금은 단군인데 중국의 요임금과 한 때이다.
한국인 순임금이 중국에서 한국의 가족사상으로 윤리와 도덕, 정신문화를 가르쳤고,
황제가 한국의 도통한 학자인 자부선인에게서 배우고 와서 생활문화를 일으켰고,
한국인 형제인 소련과 대련이 중국에 와서 효도를 실천해 보였다.
단군의 아들 부루가 와서 국경을 정했고, 이윤은 한국의 성인 유위자에게 배워서
은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한국은 나라가 컸지만 중국을 없인 여기지 않았고,
군대가 강했지만 중국을 침략하지 않았다. 풍속이 아름답고 도타워서 사람들이 길을 양보하며
경제는 분배 정의가 이루어져 밥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는 각기 직분에 충실해 섞이지 않으니
이 나라야 말로 동쪽에 있는 예절의 나라요. 군자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한국에 가서 살고 싶어 하시면서'누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자료출처:한국전례원 원장 김득중(실천생활예절)
2. 동이열전(東夷列傳)의 뿌리
'東夷列傳'의 기록은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중국 유학의 경전(儒學經典)에
있는 말들을 종합한 것이다
'서전'의 순전(중국 고대 왕들의 사적을 적음)을 보면
"순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설아, 백성들이 친하지 못해서 부모 형제 자녀들의 위계질서가 문란하고 불손하구나
너를 교육부 장관을 시키니
아버지는 의롭게하고(父義)
어머니는 사랑하고(母慈)
형은 우애하고(兄友)
동생은 공손히 하고(弟恭)
자녀는 효도하고(子孝)
다섯가지 가르침을 공경에 펼치고 너그럽게 하라
(帝曰 契 百姓不親 五品不遜 敬敷五敎在寬)고 하셨다."
'맹자'(孟子) 등문공장(騰文公章)에 보면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인(舜)께서 근심이 있으시어 설을 교육부 장관을 삼아
인륜을 가르치시니 부자유친(父子有親)며 군신유의(君臣有義)이며 부부유별(夫婦有別)
이며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孟子 曰 聖人 有憂之 使契爲司從 敎以人倫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이니라 하셨다.
'소학'의 계고 명륜장(小學 稽古明倫章)
공자의 말씀으로 "소련과 대련이 부모의 상을 잘 치러 사흘을 지극히
애통했으며, 석달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한해를 슬펴 했으며, 삼년을 근심했으니
이들은 동이(한국)인의 아들이다.
(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月不解 朞悲哀 三年憂 東夷之子也)"고 했다